조금씩 뒤로 밀려간다.

처음엔 몰랐다. 한 발 물러난 건지, 밀린 건지. 그냥 거기 서 있다고 생각했다. 그런데 돌아보면 출발점이 저만큼 멀어져 있다.

안개 속 길

그래도 함께하고 싶었다. 그 마음 하나로 반 발자국을 내밀었다. 반 발자국. 한 발도 아니고 반. 그게 내가 낼 수 있는 전부였다.

그런데 그것마저 안 됐다.

내민 발이 허공을 밟는 느낌. 닿을 줄 알았는데 닿지 않는 거리.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아까보다 조금 더 뒤에 서 있다.

한 번이면 괜찮았을 거다. 두 번이면 다시 해볼 수 있었을 거다. 그런데 몇 번을 반복하니까, 이제 발을 내미는 것 자체가 무섭다. 나갈 수 없는 게 아니라 나가는 게 두렵다. 또 안 되면 어쩌지. 또 밀리면. 또 허공이면.

그렇게 겁쟁이가 됐다.

아니, 됐다는 말도 맞지 않다. 만들어진 거다. 처음부터 겁이 많았던 게 아니라, 용기를 꺼낼 때마다 깨져서 이제 꺼내는 법을 잊어버린 거다.

창가에 앉아있는 사람

가장 힘든 건 그 모습을 내가 지켜봐야 한다는 거다.

아무것도 못 하는 나를, 나가지 못하는 나를, 또 한 번 주저앉은 나를 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보고 있어야 한다. 그게 제일 가엽다. 남이 나를 가엽게 보는 건 견딜 수 있는데, 내가 나를 가엽게 보는 건 견디기 어렵다.

할 수가 없다. 정말로 할 수가 없다.

이 문장이 변명이 아니라 고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. "할 수 없다"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"해보았다"가 들어 있는지.

그래도.

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건, 아직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는 뜻일 거다. 반 발자국도 못 나가지만, 고개는 들고 있으니까. 눈은 아직 앞을 보고 있으니까.

언젠가 다시 반 발자국을 내밀 수 있을까. 모르겠다. 다만 오늘은, 여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. 나에게.